아시가라 고개와 아시가라 길(야구라자와오칸)
~북쪽과 남쪽을 잇는 자연의 길 동쪽과 서쪽을 잇는 역사의 길~

  • 동쪽과 서쪽을 잇는 역사의 길  

    아시가라 언덕이라고 불린 아시가라 고개

    아시가라 고개는 과거에 [아시가라 언덕], [아시가라 고갯길]이라 불렸고, 그곳을 지나는 아시가라 길은 수도(사이고쿠)와 도고쿠를 연결하는 중요한 관도였습니다.
    만엽집(万葉集)에는 아시가라의 지명을 읊은 노래가 20수 가까이 있으며, 아시가라 만요 공원에는 이러한 노래비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엽집에 실린 아시가라

나라 시대 무렵에 간토 지방과 도호쿠 지방은 ‘도고쿠(東国)’라고 불렸습니다. 만엽집에 있는 아시가라를 읊조린 단가에서는 수도에서 도고쿠로 파견된 관리나 도고쿠에서 규슈로 수비병 임무를 떠나는 사람들이 고개의 신에게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하거나,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먼 이국의 땅을 향한 고난에 대해 읊은 노래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아즈마’의 어원이 된 장소?

    고지키에 따르면 야마토 다케루(일본무존)가 간토 동부를 평정하고 돌아와 아시가라 고개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아시가라묘진(足柄明神)이 흰 사슴의 모습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곧바로 먹다 남은 달래를 던졌는데, 흰 사슴의 눈에 맞아 흰 사슴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야마토 다케루가 아시가라의 호족을 종속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야마토 다케루가 아시가라 고개에 서서 하시리미즈(현 요코스카시)의 방향을 향해 죽은 처 오토타치바나히메노미코토(오토타치바나히메)를 생각하며, ‘아즈마하야’(아아, 내 아내여)라고 말했다고 하여 아시가라 고개에서 동쪽을 ‘아즈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장소는 아마 현재의 아시가라묘진 부근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북쪽과 남쪽을 잇는 자연의 길

‘동쪽과 서쪽을 잇는 역사의 길’로 예부터 이용되었던 아시가라 고개는 지질적으로는 필리핀해판과 북미판 경계 부근에 위치하여, ‘북쪽과 남쪽을 잇는 자연의 길’을 체감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학적 장소입니다. (①)

북쪽과 남쪽이 연결된 장소

아시가라 고개는 가나가와현 미나미아시가라시와 시즈오카현 오야마초의 경계에 있으며, 하코네 외륜산인 긴토키산에서부터 야쿠라다케 등이 있는 아시가라 산지로 이어진 능선의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③)
현재 아시가라 고개는 해발 약 730m지만, 이 근처는 약 100만 년 정도 전까지는 혼슈와 남쪽 바다에서 필리핀해판을 타고 온 이즈 지괴를 사이에 둔 얕은 바다였습니다. 그 후, 이즈 지괴가 혼슈와 충돌하면서 해저에 퇴적된 모래와 진흙층(아시가라층군)이 지표로 밀려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약 40만 년 전에는 하코네 화산이 활동을 시작했고, 아시가라 산지의 일부는 그 분출물에 덮여 있으나, 지금도 계속해서 융기하고 있습니다. (②)

 

격렬했던 충격이 전해지는 흔적

만요 공원에는 야쿠라다케로 가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만요 공원이 있는 아시가라 고개 주변은 긴토키산의 용암(약 35~27만 년 전)에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야쿠라다케로 가는 등산로의 분기점은 고개보다 높은 해발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오래된 시대에 분화한 가리카와 용암(약 40~35만년 전)의 큰 암석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④⑤)
하코네 화산에서 가장 오래된 용암이 해발 780m 지점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 지역이 북미판에 밀려 이즈 지괴에 충돌한 후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융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