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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도노이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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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식동굴은 「시토도노이와야」라고 불리며 파도의 침식으로 생겨났습니다.

1180년(지쇼 4년), 이시바시야마 전투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헤이케 가문에게 패하였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하코네야마 산속과 유가와라의 시토도노이와야 등을 거쳐 마지막에 이곳 마나즈루의 시토도노이와야에 몸을 숨겼습니다.

추적자로부터 무사히 도주한 요리토모는 일곱 명의 가신과 함께 마나즈루 해안에서 아와노쿠니(현재 지바현)로 탈출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요리토모가 동굴에 숨어있을 때 추적자가 동굴을 들여다봤습니다. 마침 그때, 「시토토」라는 새(멧새의 일종)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추적자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런 연유로 「시토도노이와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도히 사네히라

이시바시야마 전투에서 크게 패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불과 신하 7명만을 데리고 산속으로 도주하였습니다. 그는 유가하라 부근을 영지로 삼고 있던 도히 사네히라, 도히라 부자의 도움으로 동굴과 속이 빈 거목 안에 몸을 숨겨 적의 추적을 따돌렸습니다.

도히 사네히라는 사가미노쿠니(현재 가나가와현)의 호족인 나카무라 씨 출신으로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활약한 무장입니다.

도히고(현재 유가와라마치)가 본거지였는데, JR유가와라역에서 조간지 부근에 사네히라의 저택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요리토모는 사네히라가 준비한 작은 배로 아와노쿠니(현재 지바현)로 건너가 재기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패전으로부터 1개월 보름 후인 10월 7일, 대군을 이끌고 당당히 가마쿠라에 입성하였습니다.

현재 유가와라역 앞 교차로에는 도히 사네히라와 그 부인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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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토모 주종 칠기

 

 「요리토모 주종 칠기」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주인으로 하는 7인, 도히 지로 사네히라, 오카자키 시로 요시자네, 아다치 도쿠로 모리나가, 다시로 간자 노부쓰나, 쓰치야 사부로 무네토, 신카이 지로 다다우지를 말합니다.

도히 사네히라의 위패를 모신 절인 조간지에는 이 일곱 무사의 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도히 사네히라의 적자 도히라는 아와노쿠니(현재 지바현)에는 가지 않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부인인 호조 마사코에게 요리토모의 안부를 알리러 갔으므로 칠기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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