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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도노이와야

이 해식동굴은 「시토도노이와야」라고 불리며 파도의 침식으로 생겨났습니다.

1180년(지쇼 4년), 이시바시야마 전투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헤이케 가문에게 패하였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하코네야마 산속과 유가와라의 시토도노이와야 등을 거쳐 마지막에 이곳 마나즈루의 시토도노이와야에 몸을 숨겼습니다.

추적자로부터 무사히 도주한 요리토모는 일곱 명의 가신과 함께 마나즈루 해안에서 아와노쿠니(현재 지바현)로 탈출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요리토모가 동굴에 숨어있을 때 추적자가 동굴을 들여다봤습니다. 마침 그때, 「시토토」라는 새(멧새의 일종)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추적자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런 연유로 「시토도노이와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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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도노이와야의 변화

요리토모 시대에는 길이가 130m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굴이 점차 파도에 깎여 막부 말기에는 폭 3m, 길이 11m 정도의 크기로 변하였습니다. 당시 동굴은 바다에 접해 있었는데 다이쇼 시대의 간토 대지진으로 토지가 융기하여 현재 높이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마나즈루미사키 용암(안산암질)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우라 반도에 해군비행장 건설을 위한 자재로써 많은 돌이 반출되어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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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융기 전의 시토도노이와야」

(1992년: 다이쇼 11년)

마나즈루 세 성씨의 유래

마나즈루 지역에는 예로부터 「아오키」, 「고미」, 「오모리」라는 세 성씨가 있습니다. 요리토모가 시토도노이와야에 몸을 숨겼을 때 도움을 준 공적으로 그 내용과 연관된 성씨를 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뭇가지로 동굴 입구를 숨긴 자에게는 「아오키」, 음식을 가져다준 자에게는 다섯 가지 맛을 의미하는 「고미」, 추적자로부터 요리토모를 지키기 위해 망을 본 자에게는 「오모리」라는 성씨를 하사했습니다.